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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성경만으로, 초대교회로 돌아가자!/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현세에서 영생을 이루시는 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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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  마태복음 3장 7~12절

 

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진실한 회개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 열매는 이전과 다른 심신 생활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려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기대어 회개한 듯이 여기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 돌로 이룬 아브라함의 자손만도 못한 회개가 아브라함에 기댄 회개입니다.

 주님을 믿으니 회개의 뜻만 있어도 회개한 것이라고 여기면 돌만도 못한 회개입니다.

 회개했으면 자기가 좋아하건 싫어하건 상관없이 회개한 기준에 맞는 자기로 삶을 바꿔야 회개로 인정됩니다.

 표현에 그치는 미안과 죄송을 회개한 것으로 여기고 이전대로 자기를 버리지 않고 떳떳하게 여기는 태도는 매우 악한 태도입니다.

 회개는 반드시 회개의 열매를 보이며 그 삶을 참으로 옳게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한에게 물 세례를 하게 하셨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며 악한 행위에서 벗어나라고 합니다. 이는 지음 받은 사람으로서 마땅한 인격생활을 하라는 말씀이며 세상의 윤리 도덕으로 선행을 쌓는 사람으로 살라는 게 아닙니다.

 요한의 물 세례는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으로 회복, 곧 본연의 사람다움을 쓰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육체 인생의 마땅한 모습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비록 소멸하는 육체로 살지만 지으신 사람다움을 회복하는 인격 삶을 살라고 함입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하나님이 지으신 목적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회복이 없이는 지으신 목적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물 세례만으로는 영생을 이루지 못하지만 영생을 이루는 과정의 선(先) 절차로서 물 세례는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요한이 주는 물 세례와 다른 형태로 세례를 주십니다. 이 세례를 성령과 불로 주시는 세례라고 합니다. 이 세례는 성령과 불로 영생을 이루는 참 세례이며 이 세례를 받아야 영생을 입습니다.

 성령 세례, 불 세례는 주님께서 이루신 은혜를 입는 세례로, 지으신 자기 회복의 인격 인생에 대속의 은혜를 입히시는 세례입니다. 지으신 자기 회복이 되어야 자기가 죄인임을 시인할 수 있고, 이 사람이 주님께서 주시는 세례를 받아 회개하게 됩니다.

 믿음 인생의 절차에 따라 세례 의식을 행하지만 그 실질은 물 세례와 성령 세례, 불 세례입니다.

 성령 세례는 영생을 살게 하는 세례로 해야 할 것을 하게 하는 세례를 가리킵니다.

 불 세례는 영생을 살게 하는 세례로 소멸하는 인생 중에 없어져야 할 것을 없애는 세례로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게 하는 세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불로 태우심' '불에 태워짐'을 알게 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기 23장 10절)

 욥은 큰 재앙으로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받으면서 연단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 연단의 시기를 지나면 정금 같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정금 같이 나오게 되어야 영생의 참 크기입니다.

 연단은 불태움입니다. 다 타서 없어져야 남을 것만 남습니다. 타서 없어지는 것은 유한한 것이고 타고도 남은 것이 영원한 것입니다.

 연단은 정금을 내기 위한 수고입니다. 연단을 통해야 정금이 나오듯이 우리 인생에서 영생의 정금을 얻으려면 반드시 연단을 현실에서 받아야 합니다. 이 수고는 첫 죄(원죄)로 죽은 자의 받을 마땅함이며 우리 유한 인생은 영생 정금 이력을 이루기 위해 주셨습니다. 자기 유한 인생을 이 목적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어도 하나님께서 인생을 유한이 다하도록 지키시는 것은 이 목적 성취를 위한 참으심입니다.

 우리는 현세 현실을 살면서 갖은 고난을 겪습니다. 소멸하는 인생에 당연히 따르는 수고입니다. 그렇지만 다 정금을 내는 연단의 기간이 아닙니다. 정금을 내는 불탐은 첫 죄(원죄)로 인한 고난 인생을 받아 그 인생을 반복죄로 쓰지 않고 믿음의 진실에 쓰느라 겪는 고난이 타는 것입니다.

 소멸하는 고난의 인생은 첫 죄로 인한 필연 결과입니다. 이것 역시도 타는 것입니다. 아무도 유한 인생으로 고난 중 소멸에 들기를 원하지 않으나 필연 이에 이르고 맙니다. 그래서 이를 잊으려고 소멸에 이르기까지 소멸을 잊으려고 갖은 변명으로 인생의 맛을 자랑합니다.

 고난 중 소멸에 이르는 유한 인생은 첫 죄의 결과이자 이미 정죄된 결과로서 이미 하나님 안에서 집행되었고 현세에서 반드시 집행되어 조금도 피할 수 없습니다. 죄로 인한 태움이나 정금을 내는 태움은 아닙니다.

 정금을 내는 태움은 믿음으로 겪는 고난으로 자기 안에서 자기중심으로 인한 고난과 세상 안에서 세상중심으로 인한 고난을 겪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고난이 되는 원인은 영생 언약을 지키는 믿음의 진실을 방해하는 자기와 세상 압박과 미혹입니다.

 믿음을 버리면 이러한 고난은 사라집니다. 그러면 첫 죄의 결과 상태로 유한 소멸을 마치고 영생은 없는 인생, 반복 죄 인생입니다.

 이 반복 죄 인생은 최종 심판을 받는데 그 심판 또한 불에 탐입니다. 현세에서는 영생을 소원하면서 소멸에 이르는 불탐이지만 이 영생의 기회를 무시한 반복 죄의 결과를 받습니다. 이 결과는 현세 죽음을 지나서 받을 뿐만 아니라 현세 현재에서 받습니다. 그리고 최종 심판의 부활로 받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의 불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첫 죄로 인한 불탐, 또 하나는 정금을 내는 불탐입니다.

 첫 죄로 인한 붙탐은 소멸로 마치고, 그 불탐의 이력에 의한 심판은 현세에만 있습니다. 이는 이미 심판하신 결과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금을 내는 불탐은 대속을 입음으로 생긴 불탐입니다. 

 내세에 낙원과 옥이 있듯이 현세에도 낙원(천국)과 옥이 있습니다.

 옥은 태우는 곳이고 낙원은 정금이 모인 곳인데 현세에는 이런 두 현상이 함께 작동하고 있으나 내세에는 이 두 현상이 구별되어 낙원과 옥으로 나뉩니다. 우리 인생 모든 현재에 이 두 세계가 동시 작동하고 있으며 옥 태움을 지나 낙원 누림을 동시에 겪는 게 현세입니다. 현세만 함께 동시 작동합니다.

 옥 태움이 두 가지로 나타나니 첫 죄(원죄)의 결과 태움과 정금을 내는 태움이 있으며, 정금을 내는 태움이 참으로 가치 있는 태움입니다. 이런 태우시는 현장이 있는 현세의 우리 인생이 영생을 얻은 인생입니다.

 

(+) 

 육체 인생은 모양은 몸으로 나타나지만 그 모양의 주체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 안에서 생명이 활동합니다. 이 생명을 영혼이라 합니다.

 생명은 진리를 받는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귀가 지배하면 마귀를 진리로 받고, 성령이 이끌면 성령을 진리로 받습니다.

 세상은 마귀의 미혹으로 죄의 결과상태가 되었고 사람의 영혼은 죄를 따라 작동하지만 그 영혼은 마귀가 지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지은 것이며 그 영혼의 본성을 거두지 않으셨기에 죄를 따르면서도 영생을 소망합니다. 그 소망을 선용하셔서 성령의 인도를 받게 하시니, 곧 지으신 본성을 선용하셔서 지으신 목적인 영생을 입히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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