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1장 20~25절
20 저희가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21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주님이 무화과 때가 아님에도 무화과를 얻고자 하실 때 얻지 못하시고 그 나무가 죽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실 때 얻지 못하심을 기준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말씀대로 그 무화과 나무는 말라 죽었습니다. 사람의 안목으로 무화과 나무 입장을 생각해 보면 자연 질서대로 있었을 뿐인데 주님의 원함을 따르지 못한 것으로 죽음을 받은 것이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주님의 행위는 죄와 악이 없습니다. 그 마음에 선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행위와 마음은 창조 질서와 구원 질서에 부합하지만 사람이 잘 공감하지 못합니다.
주님의 행위는 사람을 위한 것이며, 본문에서 주님의 행위는 우리의 기도를 설명하시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지으신 질서대로 있는 모든 것들이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대속 은혜를 입은 채 유한동안 보존되지만 단 한 목적 가치 때문에 보존하십니다. 그것은 용서하시고 대속하신 은혜를 입도록 하시려는 겁니다.
무화과 나무가 좀 더 살지 못하고 말라 죽은 것은 유한을 삶이라 여기는 관점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영생만 삶이라 여기는 관점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영생의 기도를 가르치시려고 그 유한 가치를 귀하게 선용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 한 죽음이 무화과 나무처럼 영생을 위해 선용된다면 이보다 더한 영광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런 행위로 밝히고자 하시는 도리는 믿음의 기도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기도를 할 수 있도록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믿음의 기도여야 합니다.
주님께서 온전하고 완전하게 아버지 하나님을 믿으신 것 같이 우리 안에도 주님의 용서와 대속을 온전하고 완전하게 믿는 성품이 있습니다. 이는 지으신 자기에 영생 복음이 닿아서 일으킨 믿음 성품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 안에 들어오신 주님께서 영생의 말씀으로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이 자기로서 기도하면 믿음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우리의 악성과 악습이 방해하면 믿음의 기도가 힘을 잃습니다. 베드로가 바다에 뛰어내려 주님께 물 위로 걸어 나아갈 때 주님만 보지 않고 풍랑을 보면서 걷지 못하고 물에 빠지는 것과 같이 자기 악성과 악습은 믿음의 기도를 순전하게 하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자기 악성과 악습을 버리고 온전히 믿음의 기도를 하면 주님처럼 권능의 기도를 하게 됩니다.
만유의 질서는 사람의 영생을 위해서 그대로 보존하시는데 우리가 만유의 보존 질서를 넘는 믿음의 기도를 하면 만유는 자기 질서를 버리고 작동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기도는 만유의 자기 질서대로 작동하는 것에 매이지 않고 만유 보존의 목적에 따라 해야 합니다.
주님의 용서와 대속을 믿는 자기로 한 자기만 보며 그 자기로 의식을 다 집중하여 그것이 전부인 인격으로서 믿음의 기도를 하면 무화과 나무가 변한 것을 넘어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질 수도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받아 역사하시는 일입니다. 이렇게까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의 이 기도 응답을 받기 위해서 자기를 먼저 준비하기 바랍니다. 영생 언약을 믿고 있는 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생 언약을 믿고 있는 인자 예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의 인격은 '용서'로 드러납니다. 본문의 마지막에서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누군가를 향한 혐의가 있을 때에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와 동일한 몸으로 모든 고통을 다 느끼셨음에도 십자가 인생을 행복하게 여기셨습니다. 모두에게 배신당하고 홀로 계셨음에도 외롭지 않고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복이 내게 있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경험하고 있는 행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며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 하셨습니다.
용서는 해를 입은 자가 할 수 있습니다. 해를 입음은 진리의 분별에 의해 해를 입은 것입니다.
내가 그를 용서함으로 그가 내게 채우는 일이 없어지게 되니, 용서하는 만큼 비참해진 현실을 감수해야 합니다. 이런 불리한 용서를 네가 하면 그 크기만큼 내가 갚으신다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용서 없이 상대로부터 받아 채우면 유한의 것이 채워지는 것이지만, 용서한 나에게 하나님이 갚으시면 영생의 가치가 채워집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빈틈없이 정확히 계산하십니다.
영생의 언약 앞에 반응하는 믿음의 사람 안에는 반드시 용서하는 인격이 작동합니다.
주님처럼 유한의 가치를 가지는 모든 것을 향해서 용서의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결국 믿음의 기도는 헛것입니다.
힘 있는 기도를 하고 싶다면 용서하는 인생을 살기 바랍니다. 이 사람에게 우리 하나님이 네가 기도한 대로 내가 이루리라 하시는 능력 역사를 이루십니다. 참으로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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